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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에 월백하고... 달이 익어가는 밤

이남주 기자 입력 2026.09.05 12:07 수정 2026.09.06 09:49

흙은 달빛을 머금고, 불은 예술을 빚는다 — 제17회 경상북도 도자기문화축전

배꽃에 달빛이 내려앉고, 가을밤의 달이 천천히 익어가는 시간. 김천의 밤, 장작가마에 불이 피어오른다. 붉은 불꽃 사이로 흙이 숨을 쉬고, 장인의 손끝에서 빚어진 다완에는 오래된 시간과 새로운 마음이 함께 담긴다.

 


“이화에 월백하고, 달이 익어가는 밤.” 이번 제17회 경상북도 도자기문화축전의 이 아름다운 문장은 단순한 행사 슬로건이 아니다. 그것은 흙과 불, 달빛과 사람의 마음이 한데 어우러지는 한 편의 시와 같은 축전의 풍경이다.


도자기는 흙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흙만으로는 도자기가 될 수 없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고, 기다림의 시간이 더해지고, 마침내 뜨거운 불을 견뎌야 한다. 그 지난한 시간을 건너고 나서야 비로소 하나의 그릇이 세상에 나온다.


그래서 도자기는 흙의 예술이면서 기다림의 예술이고, 불의 예술이면서 사람의 마음을 담는 예술이다.
이번 축전에서 특별히 마련된 전통 장작가마 불지피기는 그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시민들이 직접 다완을 그리고, 가족의 건강과 행복, 소망을 적은 장작을 준비한다. 그리고 그 소망을 품은 장작 하나하나가 장작가마의 불 속으로 들어간다.


누군가에게는 가족의 평안을 바라는 마음이고,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시작을 향한 소망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오래 간직하고 싶은 작은 꿈일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이 장작이 되어 불을 만나고, 불은 다시 그 마음을 품은 흙을 작품으로 빚어낸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예술인가. 작가는 흙을 빚지만, 시민은 그 안에 마음을 빚는다.
그리고 불은 그 모든 마음을 하나로 녹여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다.
달빛이 내려앉은 가을밤, 장작가마의 불꽃이 어둠을 밝힌다. 차가운 달빛과 뜨거운 불빛이 서로 다른 듯하면서도 한 풍경 안에서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하늘에는 달이 익어가고, 가마에서는 그릇이 익어간다.
달은 밤의 시간을 익히고, 불은 흙의 시간을 익힌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사람의 마음도 함께 익어간다.


이번 축전은 전시와 시연, 작가 워크숍, 다완 만들기, 전기물레 체험, 소원 장작 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들이 도자기를 단순히 ‘보는 예술’에서 벗어나 직접 만지고, 그리고, 빚고, 소망을 담아보는 참여의 예술로 경험하도록 했다.


특히 시민의 손으로 만든 다완이 전문 작가의 손길을 거쳐 장작가마의 뜨거운 불을 통과하고 다시 하나의 작품으로 태어나는 과정은 이번 축전이 지닌 가장 특별한 의미일 것이다.


흙은 자신의 모습을 고집하지 않는다.
손이 닿으면 형태를 바꾸고, 불을 만나면 성질을 바꾸며,
시간을 견뎌낸 뒤에는 세상에 하나뿐인 아름다움으로 태어난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삶과도 닮아 있다.

사람도 살아가면서 수많은 손길을 만나고, 뜨거운 시간을 견디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했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러기에 도자기를 바라본다는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그릇 하나를 바라보는 일이 아니다.
한 사람의 시간과 인내, 장인의 혼과 삶의 흔적을 바라보는 일이다.
경북 도예인들이 오랜 세월 이어온 전통 역시 그렇게 만들어졌다. 흙을 가까이하고, 불을 이해하며, 한 작품을 위해 수없이 손을 움직였던 장인들의 시간이 오늘의 경북 도예를 만들었다.


이번 축전에서 마련된 최우수·우수 작가상 역시 단순히 뛰어난 작품에 주어지는 상이 아니다. 그것은 흙과 불을 벗 삼아 경북 도예의 맥을 이어온 작가들의 열정과 인내, 그리고 예술혼에 보내는 존경의 박수다.


그리고 이제 김천의 가을밤은 다시 깊어간다.
자두꽃(이화李花) 위에 내려앉은 달빛처럼 고요한 밤.
그 고요함을 깨우며 장작가마의 불꽃이 힘차게 타오른다.
사람들은 가마 앞에 모여 자신의 소원을 빌고, 작가는 흙을 바라보며 작품의 탄생을 기다린다.


이화에 월백하고, 달이 익어가는 밤.
달빛 아래 흙이 익고, 불꽃 속에서 예술이 익으며,
사람들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익어간다.


어쩌면 이 밤에 우리가 빚는 것은 단순한 도자기가 아닐 것이다.
한 시대의 문화이고, 한 지역의 기억이며,
사람과 예술이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내일일 것이다.



그리고 훗날 누군가 그 밤을 기억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날 김천의 밤에는 달도 익어가고, 흙도 익어가고,
사람들의 마음도 아름답게 익어가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이화에 월백하고, 달이 익어가는 밤」
제17회 경상북도 도자기문화축전이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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