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일, 1박 2일 동안 만난 군산의 예술인들, 전시장에서 마주했던 작품들, 무대 위에서 서로 다른 장르가 어우러지던 순간들이 차창 밖 풍경처럼 하나둘 지나갔다.
김천과 군산의 문화예술 교류는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행사가 아니다. 오랜 시간 서로의 예술인들이 만나고 작품을 나누며 이어온 민간 중심의 문화교류다. 행정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움직이는 교류를 넘어, 예술인과 시민들이 직접 만나 관계를 쌓아왔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더욱 크다.
무엇보다 이 만남에는 상징성이 있다. 동쪽의 김천과 서쪽의 군산.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두 도시가 예술을 매개로 만나면서 지역과 지역 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벽을 조금씩 허물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교류를 바라보면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서로 만나고 있는가, 아니면 단지 행사를 함께하고 있는가?”
문화교류의 횟수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문화의 깊이가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작품을 전시하고 공연을 함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다음 단계가 필요하다. 서로의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고, 시민들이 그 과정에 참여하며, 교류의 결과가 다시 지역의 문화생태계로 돌아올 때 비로소 문화교류는 지속 가능한 힘을 갖게 된다.
김천과 군산은 여러 면에서 다른 도시다. 인구 규모와 도시의 공간적 구조도 다르고, 역사적 배경과 문화자원의 성격도 다르다. 시민들이 문화예술을 접하고 참여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김천이 앞으로 고민해야 할 부분은 문화예술을 ‘행사’에서 ‘일상’으로 옮겨오는 일이다.
문화행사가 열리는 날에만 시민들이 공연장을 찾고 전시장을 찾는 구조로는 지역문화의 저변을 넓히는 데 한계가 있다. 어린이부터 청년, 중장년과 어르신까지 세대별로 문화예술을 즐기고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또한, 지역 예술인들이 창작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기반도 중요하다. 좋은 작가와 예술인이 있어도 그들이 활동할 무대와 관객, 전시와 공연의 기회가 부족하다면 지역 예술은 결국 개인의 노력에 의존하게 된다.
김천이 가진 문화자원을 다시 바라볼 필요도 있다.
직지사와 황악산, 지역의 역사와 전통문화, 도예와 문학, 음악과 공연예술 등 김천에는 이미 다양한 문화적 자원이 존재한다. 문제는 자원의 유무가 아니라 그 자원을 어떻게 하나의 문화적 이야기로 연결하느냐에 있다.
문화는 관광을 위한 장식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역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이 문화콘텐츠가 되고, 예술가의 창작과 시민의 참여가 결합할 때 비로소 도시만의 색깔이 만들어진다.
그런 점에서 군산과의 교류는 김천에 하나의 거울이 될 수 있다. 군산을 그대로 따라가자는 의미가 아니다. 서로 다른 도시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우리가 가진 강점은 무엇이고 부족한 것은 무엇인지 돌아보자는 것이다.
특히 민간 문화교류가 오랜 시간 이어져 왔다는 사실은 중요한 자산이다. 행정의 지원은 필요하지만 문화의 생명력은 결국 사람에게서 나온다. 예술인과 시민이 주체가 되고 행정은 이를 뒷받침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때 문화교류는 훨씬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이제 김천의 문화예술은 ‘무엇을 더 많이 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한 번의 공연보다 오래 기억되는 무대가 필요하고, 한 번의 전시보다 다음 세대가 다시 찾을 수 있는 문화공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행사에 참여한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그들이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가져갔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김천과 군산의 만남은 그래서 단순한 예술교류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동서의 두 도시가 예술로 만났다면, 이제 그 만남을 통해 각자의 도시를 다시 바라볼 차례다.
군산에서 이어진 만남은 내년 김천으로 이어진다. 중요한 것은 장소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교류의 깊이가 한 단계 더 깊어지는 것이다. 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시간이 쌓이고, 기억이 축적될 때 비로소 한 도시의 문화가 된다.
김천과 군산이 오랜 시간 이어온 이 작은 인연이 두 도시의 문화적 자산을 넘어, 지역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긴 이야기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