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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다시 쓰는 골든타임- 재난관리, 사후 대응에서 사전 예측으로

이남주 기자 입력 2026.08.14 09:59 수정 2026.08.14 09:59

세종사이버대학교 AI학과 AI Lab 연구원 조상명

새벽 시간, 비는 아직 재난 문자 기준에 도달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천 수위는 평소보다 빠르게 오르고, 배수로 주변 CCTV에는 물이 고이는 장면이 잡힌다. 과거 침수 이력이 있던 도로에서는 차량 흐름이 느려지고, 몇 건의 안전 신고가 같은 지역에서 반복된다. 각각의 정보만 놓고 보면 아직 ‘재난’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흩어진 신호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순간, 위험은 조금 다른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재난은 언제나 갑자기 찾아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많은 재난은 발생하기 전 작은 징후를 남긴다. 문제는 그 징후가 너무 흩어져 있거나, 너무 빠르게 변하거나, 사람의 눈으로 동시에 살피기 어렵다는 데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AI의 역할이 시작된다. AI는 재난이 발생한 뒤의 시간을 줄이는 데서 멈추지 않고, 재난이 발생하기 전의 시간을 새롭게 보게 만든다. 그렇게 골든타임의 의미는 사후 대응에서 사전 예측으로 확장된다.



골든타임의 재정의: 사후 대응에서 사전 예측으로

우리가 익숙하게 말해 온 골든타임은 주로 재난이 발생한 뒤의 시간이었다. 사고가 난 뒤 얼마나 빨리 신고를 받고, 얼마나 빨리 출동하며, 얼마나 신속하게 구조와 복구가 이루어지는지가 중요했다. 물론 이 의미의 골든타임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기후변화, 도시 밀집, 기반시설 노후화, 전기차 화재, 인파 사고처럼 재난의 양상이 복잡해진 지금, 발생 후의 빠른 대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제 골든타임은 재난 발생 이후의 시간만이 아니라, 재난 발생 이전의 시간까지 포함해야 한다. 위험이 현실의 피해로 번지기 전, 얼마나 빨리 징후를 발견하고 조치할 수 있는가. AI 시대 재난관리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과거의 재난관리는 경험과 직관, 보고와 연락 체계에 크게 의존했다. 오랜 경험을 가진 공직자의 감각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오늘날의 재난은 그것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빠르고 복합적으로 움직인다. 한 지역의 집중호우가 도로 침수와 교통 정체로 이어지고, 다시 구조 지연과 시민 불편으로 확산된다. 하나의 위험이 다른 위험을 불러오는 연쇄 재난의 시대다.

이런 시대에 골든타임은 단순히 출동 이후의 시간이 아니다. 위험 신호를 해석하고, 선제 조치를 결정하며, 그 조치를 시민에게 설명하는 시간까지 포함해야 한다. AI가 다시 쓰는 골든타임이란 결국 ‘더 빨리 도착하는 행정’을 넘어 ‘더 일찍 판단하는 행정’으로의 전환을 뜻한다.


세종사이버대학교 AI학과      AI Lab 연구원 조상명
세종사이버대학교 AI학과      AI Lab 연구원 조상명

위험 신호를 먼저 읽고, 데이터를 연결하는 힘

AI가 재난관리에서 만드는 변화는 ‘더 많은 정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신호를 먼저 걸러내는 것’에 가깝다. 기상 데이터, 하천 수위, CCTV 영상, 교통 흐름, 안전 신고, 과거 피해 이력이 따로 존재할 때는 흩어진 자료에 머문다. 그러나 이 정보들이 함께 분석되면 특정 지역의 위험 가능성을 더 빨리 보여줄 수 있다. 이를 데이터 융합(Data Fusion)이라고 한다.

디지털 트윈(Digital Twin)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현실의 도시, 하천, 도로를 가상 공간에 구현해 실제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비가 더 오면 어느 도로가 먼저 잠길까”, “대피로가 막히면 어떤 경로가 대안이 될까”를 미리 시험해보는 방식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기술 이름 자체가 아니라, 흩어진 정보를 현장의 판단에 쓸 수 있는 형태로 연결하는 일이다.

지하차도 침수를 예로 들어보자. 과거에는 현장 신고나 육안 확인 이후에야 통제 판단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AI가 CCTV 영상의 수위 변화를 감지한다면 위험 화면을 더 빨리 선별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면 그것은 ‘정교한 영상 분석’에 머문다. 진짜 데이터 융합은 CCTV가 읽어낸 침수 징후가 강우량, 하천 수위, 배수 상태, 주변 교통량, 과거 침수 이력과 함께 해석될 때 가능해진다. 여러 데이터가 같은 방향으로 위험을 가리킬 때, 행정은 더 빠르고 신뢰도 높은 선제 판단에 가까워질 수 있다.

실제로 서울 서초구는 2025년 10월 전국 최초로 AI 기반 침수 계측·경보 시스템 도입을 완료하고, 2026년 수해 대책기간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강남역 일대 등 상습 침수지역 7곳과 주요 하천 3곳에 설치된 지능형 CCTV가 차량 타이어 휠과 맨홀 등 표준 규격을 바탕으로 침수 상태를 분석하고, 위험 수위에 도달하면 차단 시설과 경고 장치를 작동시키는 방식이다. 이 사례는 완성된 데이터 융합이라기보다, AI가 하나의 위험 신호를 더 정밀하게 읽어내는 출발점에 가깝다. 사람이 화면을 일일이 확인하던 방식에서 AI가 위험 화면을 먼저 골라내는 방식으로 재난 감시 체계가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현장 담당자가 수십 개, 때로는 수백 개에 이르는 CCTV 화면을 동시에 살피는 일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AI가 위험 가능성이 높은 화면을 먼저 선별해 준다면, 담당자는 더 많은 화면이 아니라 더 중요한 화면에 집중할 수 있다. AI는 현장의 판단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해야 할 대상을 더 빠르게 좁혀주는 역할을 한다. 인파 관리도 마찬가지다. 밀집도, 이동 방향, 병목 구간을 분석해 위험 신호를 조기에 보여주는 것은 AI의 몫이지만, 시민의 이동을 통제하고 현장의 책임을 지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사전 예측은 책임 있는 선제 조치로 완성된다

AI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재난 현장의 최종 판단자가 될 수는 없다. 도로를 통제할지, 주민을 대피시킬지, 어느 지역에 먼저 자원을 보낼지는 숫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주민의 이동 가능성, 취약계층의 위치, 통제에 따른 시민 불편은 데이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맥락의 영역이다. 이런 점에서 AI는 재난 현장의 지휘관이 아니라 조기경보 장치에 가깝다. AI가 데이터의 속도와 패턴을 읽는다면, 공직자는 그 데이터가 현장에서 갖는 의미를 읽어야 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경보의 품질이다. AI 경보는 빠른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오탐과 과탐이 반복되면 현장 담당자는 경보를 신뢰하기보다 무시하게 될 수 있다. 재난관리에서 위험한 것은 경보가 울리지 않는 상황만이 아니다. 너무 자주, 불분명하게 울리는 경보도 현장의 판단을 흐릴 수 있다. 결국 AI 경보는 빠르고 많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설명 가능하고 현장 기준에 맞게 조정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AI 예측이 항상 정답일 수는 없다. 데이터가 낡았거나, 현장 상황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거나, 경보의 근거가 설명되지 않는다면 AI는 오히려 혼란을 키울 수도 있다. 그래서 AI 재난관리는 예측 기술만이 아니라 데이터 관리, 설명 가능성, 최종 책임 구조와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재난관리에서 AI의 진짜 가치는 사람의 책임을 줄이는 데 있지 않다. 사람이 더 빨리, 더 근거 있게 책임질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제임스 리즌의 ‘스위스 치즈 모델’처럼, 사고는 여러 방어막의 빈틈이 겹칠 때 발생한다. AI는 그 방어막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장 점검, 주민 안내, 기관 간 협업, 훈련, 책임 있는 판단이 함께 작동할 때 재난관리 체계는 비로소 촘촘해진다.

결국 AI가 다시 쓰는 골든타임은 단순히 출동 시간을 줄이는 문제가 아니다. 재난이 발생한 뒤 빠르게 수습하는 행정에서, 재난이 발생하기 전 위험 신호를 읽고 선제적으로 판단하는 행정으로 옮겨가는 일이다. AI 시대 재난관리의 경쟁력은 기술 도입의 속도가 아니라,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방향으로 위험 신호를 얼마나 정확히 읽고, 그 신호를 얼마나 책임 있게 선제 조치로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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